2024년 여름, 한국 극장가에 등장한 영화 하이파이브는 슈퍼히어로물을 코미디로 풀어낸 이색적인 작품이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흔하지만, 이를 가족 중심의 드라마와 결합하고 한국식 유머를 얹어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이 글에서는 하이파이브가 가진 흥행 포인트를 ‘캐릭터’, ‘연출 스타일’, ‘감정선’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 본다.
하이파이브의 캐릭터가 가진 힘
하이파이브의 캐릭터는 사실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등장인물 다섯 명은 모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학부모, 할머니, 고등학생, 생계형 가장, 백수 청년까지. 그런데 그들이 갑작스레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이 설정은 마블이나 DC에서 흔히 보던 영웅들과는 다른, 보다 현실적인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캐릭터 설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백수 청년이 순간이동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 처음엔 단순한 '탈출'만을 꿈꾸지만 점차 팀의 일원으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이 꽤 인상 깊었다. 이 캐릭터의 변화가 전체 영화의 성장 서사와 맞물리면서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까지 던진다고 느꼈다. 게다가 각 캐릭터가 가진 초능력이 단순히 “멋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연결된 방식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이를테면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은 소통이 어려웠던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 캐릭터들의 초능력이 단순한 SF 장치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적 결핍을 메우는 도구로 활용된 점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설계였다. 요즘 콘텐츠 소비자들은 단순한 재미보다도 ‘감정적 보상’을 원한다. 하이파이브의 캐릭터들은 그런 측면에서 정확하게 타깃을 겨냥했다.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서사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얻고, 그 공감이 결국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코미디와 장르의 경계에서 빛난 연출력
하이파이브는 슈퍼히어로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코미디 장르에 가깝다. 그렇다고 유치하거나 단순한 웃음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연출은 오히려 ‘재기발랄함’과 ‘의외성’을 주 무기로 삼는다. 초능력을 이용한 상황들이 예측 가능한 클리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은 매 장면마다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본 건 편집과 타이밍이다. 예컨대 순간이동 장면에서 전형적인 슬로모션이 아니라, 정반대로 빠른 컷 편집을 활용해 오히려 ‘허무함’을 강조하는 방식은 참신했다. 일반적인 초능력물은 이를 화려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반면, 하이파이브는 그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인간적인 허점을 건드리며 웃음을 유발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단지 웃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관객이 캐릭터와 ‘같이 민망해하고, 같이 안타까워할 수 있는’ 참여형 감정을 자극한다. 나는 이게 지금 시대에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보는 재미에서 벗어나, ‘같이 느끼는 재미’가 필요한 시대다. 하이파이브는 그 경계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대중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잡은 작품이었다. 한편,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는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도 하이파이브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마치 ‘영웅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을 살짝 비틀며, 인물 간의 관계 회복과 내면의 변화에 더 집중한 점이 좋았다. 이는 할리우드식 정형화된 전개에서 벗어난 유쾌한 반란처럼 느껴졌다.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감정선의 설계
하이파이브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감정선의 정교함’이다. 이 영화는 가족과의 갈등, 소외, 트라우마 같은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그 방식이 무겁지 않다. 이는 연출의 세밀함과 함께 각본의 내공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웃음과 감동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는 감정선 설계는, 관객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세대를 아우르는 감정 코드가 굉장히 강하다. 나는 부모님과 이 영화를 같이 봤는데, 각자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고 웃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초능력 장면에서 재미를 느끼고, 어른들은 캐릭터들이 겪는 가족사에 눈물을 흘린다. 요즘같이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어려운 콘텐츠가 많은 시대에, 하이파이브는 세대 간 ‘공감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드문 작품이었다. 감정선을 유도하는 방식도 정제되어 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장면이 아니라, 일상의 조각들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함으로 울림을 준다. 예를 들어 할머니 캐릭터가 손주의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해하는 장면은, 부모 세대가 공감할 만한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 가족도 저런 시간이 있었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감동의 방식이 진부하지 않았던 점도 좋았다. 흔한 ‘가족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구성원 각자가 ‘성장’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가족 영화로 완성됐다. 하이파이브는 단지 웃고 떠드는 오락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이라는 무게 있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했다.
장르의 유쾌한 전복, 하이파이브가 남긴 것
하이파이브는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요즘 대중이 원하는 ‘공감’과 ‘웃음’을 정교하게 배합한 작품이다.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 실험적인 연출, 그리고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서사까지. 슈퍼히어로물을 통해 오히려 일상의 감정을 환기시킨 이 영화는 한국형 장르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재미있는데, 뭔가 남는 영화’가 바로 하이파이브였다.